참 오래도 기다렸다. 2011년, 막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자주 활동하던 카페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 2기 과정에 지원하신단다. 마에스트로라, 얼마나 대단한 인재를 양성하는지 궁금해졌다. 모집 요강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내 주의를 끈 것은 지원금이었다. 하고싶은 공부를 하면서 돈을 받다니, 역시 뭐든지 잘 하면 도움이 되는구나.

그렇지만 나는 선뜻 지원서를 쓰지 못했다. 내 실력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매년 지원 공고를 보고, 지원을 망설였지만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발목을 잡았다. 그렇게 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21살이 됐다.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 말고도 대학 졸업 전까지 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더 이상 망설이면 너무 늦어버릴 것 같았다.

지원 마감까지는 아직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급한 대로 대학 입시 때 작성했던 자기소개서를 이리저리 뜯어고쳤다. 할 말은 산더민데, 글자 수 제한은 빡빡했다. 문득 이렇게 짧은 글 안에 내가 겪은 경험들을 다 녹여낼 수 있을지, 또 그걸 보고 지원자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몇몇 블로그의 후기 글을 찾아 본 바로는 실적에 관심이 많다고 하던데, 자기소개서의 분량을 고려해봤을 때 아마 포트폴리오에서 서류 당락이 결정되지 않나 싶다. 나는 개발하여 일년째 서비스 중인 게임과 약 세달간 개발한 게임 엔진,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개발한 랜덤 채팅 서비스를 썼다.

마감을 2~3일 앞두고는 센터에서 전화가 하루에 한 번 꼴로 왔다. 금요일이 마감이고, 당일은 지원자가 몰려 접속이 원활하지 않으니 미리 제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쪽도 실적을 내야 하니 어떻게 해서든 지원자 수를 끌어올려야 하나 보다.

지원하고 나서는 학교 생활에 치여 발표도 잊고 지냈는데, 어느 날 점심때 즈음 일어나 핸드폰을 확인하니 문자가 와 있었다. 서류 전형에 합격했으니 면접을 보러 오란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면접에는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 아직까지 면접 경험이 많지 않아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서류에서 다 써내지 못한 나의 능력과 열정을 어필하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이번 기수부터는 면접 과정에 집단 토의라는게 추가됐다. 생면부지의 남들과 토의를 한다는 것은 꽤 큰 부담이었다.

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집단토의는 토의를 이끄는 사람이 점수를 잘 받으니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정리해서 말해보라 하셨다. 그런데 막상 토의를 하게 되니 말을 꺼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한 사람의 말이 끝나면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다른 사람이 말을 이어나갔다.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해서 말은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정리하고 내 논리도 다듬었다. 다행히 중간부터는 무리 없이 끼어들어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총 8명 중 세 분은 옷도 정장을 차려입고 오셨는데, 대학원생 혹은 군필 정도로 나이가 꽤 있어 보였고 의견도 거침없이 내셨다. 아마 이분들이 가장 좋은 점수를 받게 되지 않을까 싶다.

3일 뒤에는 코딩 테스트와 면접을 봤다. 준비된 문제가 넉넉잡아 100개는 되어 보였다. 코딩 테스트는 세 명이서 같은 문제를 풀게 되어 있는데, 셋 중 한 명이 문제를 뽑고 다 같이 그 문제를 푸는 방식이다. 비주얼 스튜디오와 이클립스가 있었고, 들은 바로는 파이썬도 깔려있다고 한다. 문제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어떤 언어를 쓸지 약간 고민하다 자바로 만들고 난 뒤, 시간이 남아 C#으로도 해보다 주어진 시간이 끝났다. 참고로 내 경우 코딩 테스트는 결과만 확인하고 별다른 질문 없이 끝났다.

면접장에 들어가 인사를 하고 발표를 시작했다. 발표는 서류에 담지 못했던 내용 위주로 준비했다. 창업 팀 경험과 프로젝트들, 그리고 프로그래밍을 시작한 과정을 담았다. 끝내고 나니 프레젠테이션을 깔끔하게 잘 만들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발표를 준비해온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하셨다. 그러니 혹시 이 글을 보고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에 지원하려는 분은 발표를 준비해가길 바란다. 가산점이 있을 지도 모르니까!

면접은 주로 포트폴리오로 냈던 프로젝트와 향후 계획에 관한 내용이었다. 게임은 유저 수가 얼마나 되는지, 게임 엔진은 내가 얼마나 노력해서 만들었는지 어필해보라고 하셨고, 채팅 서비스에서는 프로토콜 관련 질문을 하셨는데 내가 아는 부분이 아니어서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프로젝트를 몇 명이서 작업했는지는 꼭 한번씩 물어보셨다.

지원자 중 지원금만 받고 실제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향후 계획에서도 여러가지 질문이 나왔다. 나는 내 목표는 3단계의 5천만원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면접관 중 한분은 끈질기게 휴학을 권하셨다. 본래 2학기에 12학점만 듣고 주 3~4일 정도 서울에 올라올 계획이었는데, 시간을 많이 써야 한다면 휴학도 할만한 것 같다. 학점도 그리 잘 나온 편이 아니라 오히려 솔깃했다.

상당한 압박 면접이라고 들었는데 어차피 떨어질 거라 그런 것인지, 그 반대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꽤 편안하게 본 것 같다. 이렇게 4년의 기다림이 끝이 났다. 대단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참 길게도 썼다. 모쪼록 좋은 결과가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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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jung C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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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ftware Engineer @SNOW


Seoul, Korea